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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히 천벌을 피하고 있는 사람들

선데이 칼럼] 요행히 천벌을 피하고 있는 사람들

[중앙선데이] 입력 2020.11.21

 


        히브리어로 얼굴을 ‘파님(fanim)’이라고 한다. 파님은 ‘파나(fana)’의 복수형인데, 얼굴을 말할 때 히브리어는 항상 복수형을 사용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얼굴도 복수형이다. 성경 〈출애굽기〉에서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한다.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니라.” 이때 얼굴 역시 파님, 즉 복수형이다.
 

너도 나도 두 얼굴의 위선
위선 넘어 오만의 한 얼굴
이들과 살기가 참 피곤하다
악을 행하는 자들아, 꺼져라

한없이 자애롭다가도 때로는 무자비하기 이를 데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얼굴이란 가면처럼 어떤 표정 하나로 고정될 수 없는 까닭이다. 하나님이 그럴진대 인간이야 더 말할 게 없다.
 
인간의 얼굴은 훨씬 변화무쌍하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수많은 표정이 겹친다. 중국에서 변검(變臉) 같은 예술이 나온 것도, 그것을 ‘연극의 꽃(川劇之花)’이라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인간의 다양한 얼굴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이처럼 복수형이 차라리 자연스러운 사람 얼굴의 수가 최악인 경우는 바로 두 개일 때다. 영어로 두 얼굴을 가졌다는 ‘two-faced’는 ‘위선적인’이라는 뜻이다. 우리 말에도 그런 의미가 담겼다. 한가지 얼굴만 내보이던 누군가가 낯선 두 번째 얼굴을 드러냈을 때, 그때가 바로 그의 위선이 폭로되는 순간인 것이다. (통)
 
과거에는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에게서 그런 두 얼굴이 많이 발견됐었다. 팬들에게 병역의무 이행을 누차 약속했다가 막상 입대 날짜가 다가오니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군 면제를 받았던 스티브 유가 한 예다. 한쪽 얼굴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다른 얼굴이 그토록 혐오스러운 거다.
 
그래서 조금 과하다 싶은 처분을 받고 있는 건데 스티브 유만 그걸 모른다. 요즘 연예인들에게는 두 얼굴이 많이 사라졌다. 그런 위선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연예인으로서의 자의식도 강해진 까닭이다.
 
선데이칼럼 11/21

선데이칼럼 11/21

과거 두 얼굴의 대명사였던 정치인들이 요즘은 거의 한 얼굴이다시피 한다. 굳이 선한 이미지를 가장하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놓고 악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다 보니 기형적 얼굴이 된다. 입으로는 선을 말하면서 악의 눈을 부라리니 꼴사납지 않을 수 있겠나.
 
아무리 뭘 해도 손뼉 치는 극렬 지지자들이 있다 해도 좀 창피할 거 같기도 한데, 강철 피부는 결코 부끄러운 낯빛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신뢰라는 생각이 안중에 있을 리 없다. 후보를 안 내겠다던 곳에 후보를 내고, 또 그를 당선시키겠다고 국책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린다. 위선을 넘어 오만이다.
 
연예인과 정치인이 두 얼굴을 갖지 않으니, 이제 다른 이들도 두 얼굴의 소유자로 끼어든다. 조국 같은 반반 학자/정치인 말이다. 학문적 성과보다 안 끼는 데 없던 오지랖으로 더 유명해진 그는 그 오지랖만큼이나 넓은 두 번째 얼굴이 드러나 자기 학생들한테서 ‘가장 부끄러운 동문 1위’ 칭호를 얻었다. 이제는 부끄러워서라도 고개를 숙일 법한데, 아예 반쪽 학자의 옷을 벗어버리고 정치인의 기형적인 한 얼굴을 선택해 추켜드니 보는 이가 딱하다.
 
이런 사람들만으로도 피곤한데,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는 종교인마저 두 얼굴을 드러내니 이를 어쩔꼬.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고단하다. 사실 혜민의 두 얼굴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두 번째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2011년 트위터에 “법정스님께서 무소유가 가능하셨던 것은 책 인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런 철학으로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건물도 사고, 유료 앱 사업도 했던 거였다.
 


혜민에게 놀라웠던 건 그의 신속한 수습 능력이었다. 현각의 질타가 나오자마자 현각과 통화해 ‘기생충’을 ‘아우님’으로 바꾼 뒤, 바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만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이뤄진 일이다. 어지간한 정치인도 이런 수완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수완으로 위선을 영원히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연예인이건 정치인이건, 학자나 종교인이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공자가 일찌감치 가슴 철렁한 경고를 하지 않았나.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살아있다면 요행히 천벌을 피하고 있는 것(罔之生也 幸而免)”이라고 말이다.
 
오만은 더하다. 이건 선한 척 가장하지도 않고 대놓고 악을 행하니 안 그럴 수 없다. 그런 행동의 결과는 뻔하다. 존 러스킨이 한마디로 정리한다. “커다란 과오의 밑바닥에는 오만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큰 과오가 어찌 가려지겠나. 공자는 에두르지 않는다. 바로 핵심을 찔러 들어간다. 그렇게 행동하면서 늙도록 살아있다면 “그건 도적질(是爲賊)”이라는 것이다.
 
위선과 오만을 행하면서 살아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죽어서 천국을 탐하니 어찌 도적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얼굴로 시작했으니 예수님의 말씀으로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런 도적들에게 하는 일갈이다. “내 너희를 알지 못하니 악을 행하는 자들(evildoers)아, 내 곁에서 썩 꺼져라!”(마태복음 7:23 xhd)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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