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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四柱八字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알면 인생을 알 수 있을까. 사주명리란 태어난 연월일시, 즉 네 가지 간지에 근거하여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을 말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사주 명리만 담당하는 관리도 있었다.

아마 사주팔자를 찾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통해서 총 여덟 자를 만들어낸다. 두 개씩 묶어서 세로 네 줄로 쓰는데, 그래서 사주팔자(四柱八字)다. 연월일시가 모두 육십갑자에 맞춰 반복된다. 원래는 자신의 태어난 연월일시를 부르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2020년 11월 11일 오후 5시(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다)에 태어난 아이는 경자년 정해월 무오일 경신시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모든 이의 생년월일시를 두 시간 단위로 끊어 정리하는 방법이다.

육십갑자 계산하기

독자들은 자신의 띠를 알 것이다. 올해가 갑자년이라는 것도 아마 알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 들어가면 머리가 좀 아프다. 수학을 좀 해보자.

천간(天干)은 총 10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십간(十干)이라고도 한다. 순서를 나타낼 때도 종종 쓴다. 예전에는 가나다라 혹은 ABCD가 아니라 갑을병정을 많이 썼다. 갑질, 을질이라는 신조어도 알고 보면 천간에서 시작한 말이다.

서기로 따지는 연도와 비교하면, 0은 천간의 경에 해당한다. 2020년이 ‘경’자년인 이유다. 0부터 시작해서 경신임계갑을병정무기 순으로 정확히 10년마다 순환한다. 간단하다. 0으로 끝나는 해는 무조건 경O년이다(기원전은 좀 다르지만). 2로 끝나면 무조건 임O년, 4로 끝나는 해는 무조건 갑O년이다. 

시험에 ‘임진왜란은 몇 년에 일어났나’라는 문제의 보기가 다음과 같이 출제되었다고 하자. 

① 1590년,  ② 1592년, ③ 1592년, ④ 1593년

외울 필요가 없다. 임진년, 즉 임O년은 무조건 2로 끝난다. 답은 ② 번이다. 

지지(地支)는 12자로 이루어지는데, 그래서 흔히 십이지(十二支)라 한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다. 10과 12의 최소공배수는 60이다. 따라서 총 60개의 조합이 나오는데, 이를 육십갑자라고 하는 것이다. 십이지는 조금 어려운데, 서기로 헤아린 연도를 12로 나눠야 한다. 0년부터 시작해서 신유술해자축인묘진사오미를 하나씩 대응한다. 그런데 서기 0년은 없다. 기원전 1년에서 기원후 1년으로 바로 넘어간다. 그래서 기원전 1년이 사실상의 0년, 즉 경신년이다. 예를 들어 2016년은 12로 나누면 168로 딱 떨어진다. '신’이다.  4년을 더한 2020년은 어떻게 될까? 다섯번째가 ‘자’다. 그래서 경’자’년이다. 연도를 12로 나누어서 딱 떨어지면 무조건 O신년이다. 

이렇게 육십갑자는, 그리고 사주팔자는 계속 순환한다. 똑같은 운세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운세도 윤회하는 것일까.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얼마나 더 과거로 올라가도 계속 운세가 순환하는 것일까. 호모 사피엔스의 시작부터일까 혹은 침팬지와 인간이 나누어지기 이전일까.

띠로 보는 운세

거의 모든 대중 일간지에 띠로 보는 운세가 매일 실린다. 띠는 단 12개 정도니까, 신문에 싣기 적당하다. 별자리 운세도 마찬가지다. 재미있게도 신문마다 운세가 다 다르다. 

아무튼 십이지는 열두 종류의 동물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중에 십이지에 해당하는 동물이 정해졌는데, 한국은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순이다. 그러나 양은 사실 염소였다. 산양을 말한다. 베트남에서 소가 아니라 물소다. 토끼 대신 고양이를 쓰기도 한다. 용 대신 독수리를 쓰는 나라도 있다. 돼지 대신 멧돼지나 사슴을 갖다 대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 가면 띠도 바뀐다니.

게다가 띠의 기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보통은 간단하게 양력 1월 1일부터 계산한다. 물론 그레고리력을 만든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육십갑자를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력으로 셈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레고리오 13세는 원숭이띠인데, 원숭이띠는 활발하고 재주가 많단다. 역시 그래서 새로운 달력을 만드는 재주가 있었던 것일까.

좀 수고스럽지만, 음력으로 띠를 세면 될까. 음력 1월 1일부터 자축인묘를 따지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정말 근거가 없다. 양력이라고 하니까 마치 서양에서 들어온 것 같지만, 양력의 반대말은 한력이 아니다. 음력이다. 조선시대에도 양력과 음력이 있었고, 24절기는 양력으로 셈했다(물론 지금도 그렇다). ‘올해 동지는 양력으로 며칠이지’라고 묻지 말자. 매년 양력 12월 22일이다. 윤년에만 하루 바뀐다. 당연한 일이다.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니 말이다. 왜 우리 조상은 태양력을 써서 절기를 셈했을까. 태양의 움직임이 계절의 변화를 가늠하고 농사일의 시기를 정하는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양력으로 해도 문제다. 언제부터 해가 바뀌는가. 동지부터라는 주장과 입춘부터라는 주장이 경합한다. 연말·연초에 생일이 있는 분은 상당히 헷갈릴 것이다. 자신의 정확한 띠가 무엇인지 참 애매하다.

여기서 퀴즈. 다음에 제시된 사람은 돼지띠일까. 쥐띠일까? (참고로 동지는 12월 22일이고, 1월 1일은 물론 양력 새해, 2020년의 설날은 1월 24일, 2월 4일은 입춘이다. 작년은 돼지의 해, 올해는 쥐의 해였다.)

① 2019년 12월 24일에 태어난 사람
② 2020년 1월 2일에 태어난 사람
③ 2020년 1월 26일에 태어난 사람
④ 2020년 2월 6일에 태어난 사람

너무 제각각이다. 게다가 한국에는 ‘만 나이’라는 독특한 나이 계산법이 있고, 연초에 태어나면 ‘빠른년생’이 되기도 한다. 3월부터 12월 중순까지 태어나야 세상을 간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렇게 십이지를 계산하는 방법부터 제멋대로라면, 이걸 근거로 운세를 점치긴 좀 뭣하다.

포러 효과

사주는 믿을 만할까. 전 세계 사람을 정확하게 12등분 하여, 동일한 운세를 제공하는 ‘띠로 보는 운세’는 정말 통계적으로 터무니없다. 수억명의 운세가 똑같다니. 그래서인지 신문의 운세 코너를 보면 아주 애매하게 쓰여 있다. 포러 효과 혹은 바넘 효과라고 한다. 성격에 대한 애매한 설명이 큰 설득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당신은 종종 외로움을 타는 편이군요. 하지만 때로는 씩씩하게 살아가는 타입’이라고 해보자. 많은 사람이 ‘어쩜. 너무 정확해요’라고 할 것이다. 당연하다. 누구나 종종 외로움을 타지만, 때로는 씩씩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다 똑같다.

오늘의 운세도 이런 식이다. 오늘 네이버 운세를 찾아봤다. 내 운세다. ‘현재에 만족하여 여유를 부린다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추월하도록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아니,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말 아닌가. 다른 사람 운세를 엿보니 이렇다. ‘확실한 벗은 당신이 불확실한 처지에 놓였을 때 나타난다.’ 확실한 벗의 사전적 정의를 풀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불확실한 처지라고 해서 사라지는 친구라면, 분명 확실한 벗은 아닐 테다. 

전 세계적으로 매 두 시간마다 3만2000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이들의 사주팔자는 사실상 같다. 사주팔자의 종류는 총 51만8400개가 전부다. 남녀를 나누어도 100만여 개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떤 역술가는 본인 사주와 관상, 부모 사주까지 모두 봐야 한단다. 하지만 그런 여러 결과를 어떻게 엮을지는 오로지 ‘역술가의 재량’이라는 것이다. 재량이라니 당첨자와 사주팔자가 같은 사람은 아주 많지만,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은 극소수다. 혹시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고, 신이 나서 로또를 사러 달려가고 있는가. 분명 낙첨이다. 이거야말로 '재량껏' 확실하게 예언할 수 있다. 

계절과 성격, 그리고 건강

사주팔자를 보고 미래를 점치는 것은 분명 곤란한 일이지만, 어느 정도 확실한 것도다. 아주 높은 확률로 예언할 수 있는 현상이 있는데,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서 죽는다는 것이다. 또한,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은 늘 순환하며, 태양은 늘 일정한 방향을 뜨고 진다는 사실도 확실하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이렇게 말했다. 

"봄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희망 없는 일이다. 계절의 변화에 관심을 두는 편이 마음을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어떻게든 바뀐다는 것은 확실하다. 비가 오면 개일 것이고, 밤이 깊으면 아침이 올 것이다. 권세는 곧 시들 것이고, 권력자는 죽을 것이고, 사랑도 식고, 젊은이는 늙을 것이다. 굳이 명리학을 몰라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주기는 계절성을 띠고 나타난다. 진화생태학적으로 우리 인류도 이러한 일정한 주기에 맞춰서 적응했을 것이다. 육십갑자와 건강 혹은 성격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는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지만, 계절의 변화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제법 많다. 아마 일부는 계절에 따른 직접적인 효과일 것이고, 일부는 이에 대응한 개체의 적응적 반응일 것이다. 물론 다른 요인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영향을 미칠 것 같지만, 분명 확실한 차이가 있다. 몇몇 예를 들어보자.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근시가 많다. 3~4월에 태어난 아기는 천식을 많이 앓는다. 겨울에 태어나면 폐암을 적게 앓는다. 9월에 태어나면 대장·직장암이 더 흔하다. 6월에 태어나면, 12월에 태어난 사람보다 5% 정도 유방암을 많이 앓는다.봄에 태어나면, 불안을 더 많이 느낀다. 4~6월에 태어나면, 자살을 더 많이 한다. 1월에 태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몸에 불을 붙여 자살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연구 결과가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모른다. 주로 겨울철에 빈발하는 감염병이나 부족한 일조량, 낮은 비타민 D 합성 수준 등이 제안된다. 예를 들어 겨울에는 호흡기 감염이 흔하다. 그래서 겨울에 임신한 어머니의 체내 감염균 혹은 이에 대응하는 면역 반응이 태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임신은 9개월 동안 진행된다. 분명 한번은 덥고, 한번은 춥다. 임신 초반이 더 중요할까. 혹은 출산 무렵이 더 중요할까. 혹은 갓 태어난 아기가 처음 맞닥뜨리는 환경의 영향이 더 큰 것은 아닐까. 분명 겨울에 태어난 아기는 동상에 걸릴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을 것이다.

이런 연구는 자칫하면 심각한 오류에 빠지기 쉽다. 12월에 태어난 아이는 3월에 태어난 또래에 비해서 학업 수행능력이 떨어진다. 운동도 못 한다. 언어 능력도 떨어진다. 심지어 키도 작다. 왜 그럴까. 역시 겨울에 태어나면 안 되는 것일까. 전혀 아니다. 이런 현상은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생에게 관찰된다. 12월생은 3월생 친구보다 아직 9개월 덜 자랐기 때문이다.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몸과 마음은 빚어진다. 재태 기간을 포함한 생애 초반의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아주 중요하다. 아마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2월 29일에 태어나면 생일 선물을 적게 받을 '운명'을 타고난다. 생일 파티를 적게 하면, 성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까. 혹은 오히려 생일 파티에 몇 명이나 올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긍정적 효과가 있을까.

태어난 연월일 혹은 계절이 신체적 건강이나 성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초보 수준이다. 사실 연구비를 쓸 이유도 없고, 연구를 열심히 할 동기도 없다.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유전적, 발달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에 대한 연구도 다 못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과학적 연구를 통한 ‘근거 기반의 사주명리학’이 등장하려면 앞으로도 몇 갑자는 더 필요하다. 사주명리학의 '운명'이다. 

그런데 왠지 ‘뭘 모르는 소리. 사주팔자는 과학적이다. 믿을 만 하다’는 댓글이 달릴 것 같다. 불안하다. 칼럼이 실리는 날의 운세라도 미리 찾아서 봐야겠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parkhanso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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