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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Kg 55 김영진 동문께서 3월 19일 별세

 부고:Kg 55 김영진 동문께서 3월 19일 별세                                Kg 55  김영진동문께서  3월 19일  별세하셨습니다

빈소와 장례일정을  다음과 같이 알려드리니

바쁘시더라도 삼가 조의를 표하여 주시고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을  위로하여

주시기 바람니다



                     다     음


1)  빈   소  ;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 


2)  발    인 ;  2024년 3월21일(목요일) 11시 30분 (3) 장 지 : 서울추모공원 용인아너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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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형의 부음에 접하여 깊은 애도와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형께서 속히 천국에 도착하시어 부도도 없고 재판도 없는 평회속의 영생을 누리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고인께서는 그 시원시원한 사람 좋은 성격에다 어려운 형편의 친구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인정 많은
    의인, 의리의 사나이였지요,

    벌써 50여년전, 미국, 영국, 불란서, 독일 등지에 지사를 두고 모피의류 년 2억불 수출로 아주 잘 나가던
    진도모피, 월남의 한국인 종업원 3600명 고용하고 있던 미국회사 Philco Ford 사의 인사부장으로 잘나가던
    이종학이 귀국, 구로 3공단 1천평에 공장 짓고 세타 수출 사업에 뛰어 들었으나, 사업 부진, 고전 하던중
    진도 김영진 회장의 알선으로 진도의 거래업체로부터 들어오는 모피제품 외의 가죽의류 주문을 
    이종학에게 이전, 삼애실업은 안정기에 들어섰고 사업은 성공적이 되었습니다.

    세타수출사업이 여의 못했던 시절 추운 겨울, 손님이나 오시는 경우 사장실의 석유난로에
    불을 켜며 인내했던 이종학에게는 김영진형은 바로 구세주 였습니다.

    고정된 구라파의 buyer 들로부터 주문이 계속되는 삼애실업이 안정됐을 때 즈음
    모모 인사들의 권고로 서울정공을 반월공단 3천평에 짓고 손목시계 생산 수출길에
    진출하였으나 운이 따르지 않고 연 이은 적자에 시달리게 되었을 때, 진도의 김영진 회장이 때때로
    지원한 자금이 결국 당시에 24억여원에 달했으나, 사업은 끝내 성공치 못하고, 이종학은 폐암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지요.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요… 불상한 친구, 아까운 사람, 좋은 친구…. 의리의 사나이 김영진…
    모두 그리웁습니다.

    내가 잠시 일이 잘 풀리지 않던 중동시절, 일시 귀국시에 이종학이 나를 김영진형에게 소개헀었는데 
    이런 저런 얘기 중에 김영진형이 
    “런던지사에 가면 KG후배 X 차장이라고 있는데 내래 얘기하가쓰니 만불(USD10,000,00) 개주다 쓰라우” 
    인정 많은 평안도 사람 사투리로 씨원씨원하게 말해주던 김영진형의
    배려에 감명 받았고, 그후 London 방문시에 X 차장으로부터 만불 받아서 얼마나 긴요하게 썼던지….

    그 밖에도 소소한 episode들 많이 있으나 지면상 줄입니다.
    이종학형, 김진영형 두분 모두 의리의 사나이, 고마운 분, 존경합니다. 이제는 가고 없지만 그 우정과 배려에 감사하며 죽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두분 외에도 깊은 우정과 도움준 여러분의 친구 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제 나이 들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으니, 지난날 고마웠던 분, 신세졌던 분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으며,
    개인적으로는 살아오며 지은 많은 죄, 부끄러운 실수, 미워했던 모든 이들에게 사과 드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모두를 사랑합니다.

    홍완표 올림
    Sydney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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